돌에 새겨진 생명의 역사, 익산 미륵산성
돌에 새겨진 생명의 역사, 익산 미륵산성
  • 주연욱 기자
  • 승인 2023.05.2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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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 1,776m의 포곡식 석축산성인 익산 미륵산성은 미륵산 정상부와 북쪽 봉우리를 포함해 동쪽 계곡을 에워싼다 ⓒ
둘레 1,776m의 포곡식 석축산성인 익산 미륵산성은 미륵산 정상부와 북쪽 봉우리를 포함해 동쪽 계곡을 에워싼다.

산성의 돌 하나는 병사의 갑옷과 같다. 목숨을 구할 방패다. 가파른 산에 거대한 돌을 쌓는 행위는 호국의 염원 없이 불가능하다. 여전히 마르지 않은 우물과 폐사지 초석 틈새로 자란 꽃이 격전지에서 살아남은 질긴 생명력을 떠올린다. 익산 미륵산성(전북기념물)은 둘레 1776m 포곡식 석성으로, 미륵산 정상부와 북쪽 봉우리를 포함해 동쪽 계곡을 에워싼다. 익산 지역 11개 성곽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북쪽으로 낭산산성(전북기념물), 동쪽으로 용화산성과 선인봉산성, 남쪽으로 익산 토성(사적)과 금마도토성(전북기념물)이 미륵산성을 겹겹이 둘러싼 형태다.

차로 미륵산성에 접근하는 최대 지점은 베네스다기도원 옆 미륵산성 주차장. 여기부터 걸어서 이동해야 한다. 주차장에서 주 출입구인 동문지까지 1km 남짓, 15분이면 도착한다. 굵은 참나무가 등산로를 호위하듯 서 있다. 신선한 초록 잎과 묵은 갈색 이파리가 한 줄기에 달렸는데, 자연 속에 있는 산성 여행이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자늑자늑 알려준다. 호젓한 산책로 같은 등산로여서, 미륵산 정상에 오를 계획이 아니라면 가벼운 옷차림도 무방하다.

동문지에서 바라본 미륵산성은 좌우로 날개를 펼치고 서 있다. 성문은 동쪽과 남쪽 성벽 가운데, 서쪽 성벽 모서리에 냈다. 북쪽은 지형을 이용해 능선이 그대로 방어망이다. 산성 내부에 계곡을 포용하고 그 주위를 둘러싼 능선을 따라 포곡식으로 축조했는데, 이는 대형 산성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법이다. 지형에 따라 외벽만 돌로 쌓고 내벽은 잡석과 다진 흙으로 채우는 내탁법, 외벽과 내벽을 모두 일정한 높이까지 돌로 쌓아 올린 협축법을 섞어 축성했다.

미륵산 정상은 표석을 중심으로 두고 나무덱을 조성해 전망하기 좋다_길지혜 촬영 (2)
미륵산 정상은 표석을 중심으로 두고 나무덱을 조성해 전망하기 좋다.
미륵산성은 석축위로 올라 걸을 수 있으며 산정상으로 향하는 길로 이어진다_길지혜 촬영
미륵산성은 석축위로 올라 걸을 수 있으며 산정상으로 향하는 길로 이어진다.

미륵산성은 용화산성으로 불렸는데, 미륵산의 옛 이름이 용화산이었기 때문이다. 고조선 기준왕이 이곳으로 내려와 쌓았다고 해서 기준성이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미륵산성은 축성 연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지만, 통일신라 이후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 《와유록등 시대마다 문헌에 등장하며 그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성벽 길은 동문지 안에서 세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 성벽으로 방향을 잡아 나무 계단을 오르면 평평한 석축을 밟아볼 수 있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공격하는 돌출부인 치()는 모두 10개다. 동북쪽 치에 올라서면 반대편 남쪽으로 향한 석축과 동문지의 옹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복원된 미륵산성 전체를 조망할 포인트다. 남문지는 산세가 치켜 올라갈 정도로 가파른데, 성벽 위와 안쪽을 계단처럼 쌓아 지형에 맞췄다. 석축 위는 접근이 안 된다.

가운데 중앙 계곡부 안쪽 등산로를 따라가면 6부 능선에 있는 건물터가 보인다. 터마다 줄지어 남은 주춧돌이 꽤 큰 건물이 있었음을 짐작게 한다. 3단 석축 지역에서 확인된 동서 510m, 남북 700m 규모 저수 시설이 핵심이다. 산성 안에 샘과 못이 많다는 것은 장기전이 가능하다는 뜻. 아직 마르지 않은 집수정에 신록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정상부는 표석을 중심으로 나무 덱을 조성해 전망하기 좋다._길지혜 촬영
정상부는 표석을 중심으로 나무 덱을 조성해 전망하기 좋다.
쾌청한 날에는 북쪽으로 논산과 부여, 서쪽의 금강, 남쪽으로는 멀리 김제·전주까지 넓은 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데 익산의 요충지답다_길지혜 촬영
쾌청한 날에는 북쪽으로 논산과 부여, 서쪽의 금강, 남쪽으로는 멀리 김제·전주까지 넓은 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데 익산의 요충지답다.

세 갈래 어느 방향이든 미륵산(430m) 정상으로 향한다. 동문지 오른쪽으로 등반하면 헬기장에 이르는데, 이 길은 미륵산 정상으로 향하는 열 갈래 중 하나다. 헬기장에서 시선이 가는 곳이 있다면 화강암 채석장을 발견한 것. 익산의 돌은 산에서 이익을 보다라는 지명처럼 그 규모가 대단해, 익산에선 돌을 노잣돈처럼 품었다고 한다. 익산 화강암은 단단하고 철분 함량이 적어 부식이 잘되지 않는 장점 덕에 삼국시대부터 애용했다. 석재 이름은 보통 산 이름을 따서 부르는데, 익산 지역에서 채취한 돌은 모두 황등석이라 한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과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보물) 등은 황등석이 쓰인 대표적인 석조 문화재로 꼽힌다.

송전탑을 뒤로하고 능선을 따라 걸으면 미륵산 정상이다. 정상부는 표석을 중심으로 나무 덱을 조성해 전망하기 좋다. 남동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서동공원과 한반도 모양의 금마저수지가 들어온다. 쾌청한 날에는 북쪽으로 논산과 부여, 서쪽의 금강, 남쪽으로 멀리 김제와 전주까지 넓은 지역이 한눈에 보여 우리나라 4대 고도(古都)로 지정된 익산의 지리적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 한국관광공사 / ·사진 길지혜 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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